[스크랩] 수필강좌 - 수필의 모든 것 6
24. 5매 수필에 대하여
1. '5매수필'의 대두
'장편(掌篇)'이란 '극히 짧은'이란 뜻이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장편 소설은 있었지만 장편(掌篇)수필의 대두는 근래의 일이다. 윤오영의 '달밤'이나 피천득의 '오월'은 5매 내외로써 장편수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굳이 '장편수필'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수필과 비평'지는 2001년부터 장편수필을 기획하여 1년이 넘게 게재함으로써 처음으로 장편수필의 전개를 보여주었다. '촌감단상(寸感斷想)'이란 명칭으로 제51호에 김시헌, 정봉구, 정진권, 정목일, 안재진, 제52호에 구자분, 유병근, 장생주, 최병호, 허창옥, 제53호에 반숙자, 박재식, 심영구, 황다연, 제54호에 김수봉, 맹난자, 박영학, 이재인, 정진채의 작품이 선보였다. '수필과 비평'지는 계속해서 장편수필을 청탁하여 게재하고 있다. '새 천년 한국문인'지에서도 기획특집으로 장편수필을 게재한 바 있다
장편수필의 대두에 대하여 문단의 구체적인 반응으로써 '월간문학'지 출신 수필가들의 모임인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 2002년도 연간집을 '5매수필'로 하기로 결의하고, 세미나의 주제를 '5매 수필'의 개척과 방향'으로 잡은 것이 본격적인 논의의 시초이다.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는 '장편(掌篇)'이란 단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분량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5매 내외가 적당한 하다는 합의를 도출하였다. 따라서 '장편수필'이란 애매한 개념 대신에 명확한 개념인 '5매수필'이란 말을 붙이기로 했다. 장편수필의 전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편수필'의 불분명한 분량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정리가 필요한 것이므로,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 규정한 '5매수필'이란 용어에 대해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필과 비평'지의 장편수필의 게재와 대표에세이문학회의 5매수필 연간집 발간은 본격적인 장편수필의 전개를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5매수필의 전개가 대두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필의 분량은 대개 15매 내외로 비교적 짧은 산문이기에 현대인들이 읽기에 적당하다. 시의 장점과 소설의 장점을 두루 취하면서 독자적인 개성을 드러내는 수필은 시와 소설의 중간 거리에서 가장 경제적인 효능을 인정받아 대중문학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런데도 3분의 1로 줄여 5매 정도의 분량을 취할 까닭이 있는 것일까?
2. 5매수필 대두의 배경
짧은 수필의 요구는 '속도'를 가치화 하는 시대적 추세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본다. 독서의 경향을 보더라도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이 차츰 퇴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만화나 간단한 읽을거리, 짧은 분량의 글을 선호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시간절약의 경제성이 스피드한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의 삶과 부응하는 면이 있으며, 5매 내외의 분량은 전철이나 여행 중에서도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짧은 글 속에 함축된 심오한 사상과 값진 체험, 인생적 발견과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장편수필의 매력이다. 5매 내외의 글은 독자들에게 눈의 피로나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열독성이 있고 경쾌감을 주기 마련이다. 실제로 신문을 볼 경우에도 뉴스 벨류에 따라 톱뉴스의 제목과 부제에서부터 시작하여 필요하다면 본문을 읽어 가는 방식이 신문 읽기의 통례이다. 간결과 축약을 바라고 있다. 이는 모든 면에서 경제성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요인들이 수필의 분량을 더욱 짧게 요청하는 하나의 경향을 이루고, '5매수필'의 전개를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3. 5매수필의 모습
현재 5매수필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으로 5매수필(寸感斷想)을 기획 연재하고 있는 '수필과 비평'지의 2001년 51호, 52호, 53호, 54호에 발표된 19편을 텍스트로 삼아 5매 수필의 모습과 특징 등을 살펴본다.
1) 5매 수필의 분석
2) 5매수필의 특징
(가) 효율성
- 5매 내외의 짧은 글이기 때문에 부담성이 없다(독서의 동기유발)
- 주제전달의 용이성(경제성)
- 주제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나) 구성의 묘미
- 짧은 분량에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집필 전에 미리 구성을 하고 쓴 흔적이 보인다(구성에 대한 의식).
- 사물과 사물, 사례와 사례를 비교, 대조, 연상, 역관점으로 연결시켜 작자의 견해(주제)를 드러내는 구성을 보여준다.(단일 구성보다 2중 구성)
(다) 심오성
- 짧은 글에서 내용이 없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심오성을 추구하고 있다.
- 사상성, 철학성, 삶의 깨달음, 사물에 대한 관조 등으로 깊은 사색과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라) 참신성
- 소재, 주제, 구성 등에 있어서 눈길을 끌기 위한 요소로써 참신성을 의식하고 있다.
(마) 기법의 다양화
- 1인칭이 아닌 수필, 소설적 기법의 수필, 비평적 기법의 수필 등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5매수필'은 시도 단계이지만 이와 같은 특징들은 묘미 제공과 함께 수필문학의 새로운 전개와 발전에 한 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4. 5매수필의 전개방향
1) 압축성
장편수필의 면모는 내용의 압축성에 있다. 장황한 서사나 설명이 아니라, 압축된 사상과 내용이 요구된다. 엑키스 만으로 쓴 가장 경제적인 글이 되려면 압축성이 필요하다.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빙 둘러가는 방법보다 첩경으로 인도해야 하기에 함축과 절제, 암시와 상징, 비유와 역설 등 시적 기법을 이용하여 최대한 압축하여야 한다.
2) 참신성
주제나 소재의 참신성이 요구된다. 참신성은 어느 글이나 요구되는 요소이지만 특히 5매 내외의 수필일 경우엔 일상성적인 주제나 소재로서는 독자들의 흥미를 사로잡을 수 없다. 기발한 착상, 평범 속의 비범, 역 관점, 독자적인 해석, 새로운 소재, 전문적인 주제의 탐구, 흥미성의 계발, 공통 관심사의 새 관점 전개 등을 통해 참신성을 제공해야 한다.
3) 서정성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서사수필보다 감성이 바탕을 이루는 서정수필이 더 적합하다. 이야기가 있는 수필의 경우라면 하나의 단순한 이야기를 취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윤오영의 '달밤'과 피천득의 '오월'이 여기에 해당된다. 분량이 짧아진다는 것은 시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일 수 있다. 소설적 기법의 서사수필보다도 시적 기법의 서정수필에 적합한 양식이다.
4) 효율적인 구성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란 개념 때문에 무 구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수필은 시나, 소설, 희곡 등 픽션문학과는 달리 의도적이고 치밀한 구성을 요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움 속에 구성이 이뤄진다. 구성이 없는 문학이란 존재하는 않는다. 특히 5매수필의 경우엔 고도의 구성요법이 필요하다. 짧은 분량에 작자가 사상과 메시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선 보다 치밀한 구성이 요구된다.
5) 개성
수필은 개성의 문학이다. 어떤 문학장르보다 자신의 개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수필은 작자의 사상과 감정은 물론이요 습관, 취향, 인생관, 가치관, 태도 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소재, 주제, 문체, 사상, 태도 등에서 작자의 개성이 드러나야 독자들의 흥미를 북돋울 수 있다. 개성이 없는 글은 맛이 없는 음식이나 다름없다. 작자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의 발휘는 수필의 맛을 제공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6) 문장
간결한 문장이 요구된다. 인용문의 삽입이나 예문을 도입하는 것은 자제하는 쪽이 좋다. 논리적인 문장보다 여운을 주는 서정적인 문장이 더 적합하다. 작자가 어떤 문제를 제시하여 결론짓는 쪽보다 독자들이 생각하여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 묘미다. 서두에 금언, 격언, 시, 속담 등을 삽입하여 시작하는 경우가 있지만, 5매수필의 경우엔 단도직입식의 전개가 효과적이다.
7) 심오성
극히 짧은 분량이라고 해서 내용이 없다거나 깊이가 없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5매수필의 성패는 '짧은 글 속에 담긴 심오성'에 있다. 부담 없이 읽었더니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5매수필' 쓰기의 어려움은 짧은 분량 속에 깊이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도의 인생 연마와 깨달음의 경지를 갖지 않고선 구사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문장뿐만 아니라, 철학성과 사상성이 결부돼야 할 것이다.
8) 구성
사물과 사물, 사례와 사례를 비교, 대조, 연상, 역관점으로 연결시키고 자연현상을 인생과 결부시킨다든지, 일반적인 예시를 의미부여하는 방법 등으로 내용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좋다.
5. '5매수필'에 대한 기대
수필문학 영역의 개척과 시도라는 차원에서 '5매수필'의 본격적인 전개의 필요성을 느낀다. 변화와 속도의 시대에 문학도 이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5매수필은 속도, 변화, 경제성을 요하는 현대의 추세와 현대인의 삶의 속성에 부합되고 있다. 앞으로 '5매수필'에 대한 본격적인 영역 개척과 좋은 작품의 출현으로 수필 문학 발전의 전기 마련과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
* 鄭 木 日
- 경남신문사 편집국장
- 한국문인협회수필분과회장
- 수필집- [달빛고요][대금산조]
- [별 보며 쓰는 편지][나의 해외 문화 기행][심금][가을금관」외 다수
25. 수필의 양잠설
어느 촌 농가에서 하루 저녁 잔 적이 있었다.
달은 훤히 밝은데, 어디서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더러 물었더니 옆 방에서 누에가 풀 먹는 소리였었다. 여러 누에가 어석어석 다투어서 뽕잎 먹는 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 같았다.
식욕이 왕성한 까닭이었다. 이때 뽕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며칠을 먹고 나면 누에 체내에 지방질이 충만해서 피부가 긴장되고 윤택하며 엿빛을 띠게 된다. 그때부터 식욕이 감퇴된다. 이것을 최안기(催眼期)라고 한다.
그러다가 아주 단식을 해버린다. 그러고는 실을 토해서 제 몸을 고정시키고 고개만 들고 잔다. 이것을 누에가 한잠 잔다고 한다. 얼마 후에 탈피를 하고 고개를 든다. 이것을 기잠(起蠶)이라고 한다. 이때에 누에의 체질은 극도로 쇠약해서 보호에 특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
다시 뽕을 먹기 시작한다. 초잠 때와 같다.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서 최안, 탈피, 기잠이 된다. 이것을 일령 이령(一齡二齡) 혹은 한잠 두잠 잤다고 한다.
오령이 되면 집을 짓고 집 속에 들어 앉는다. 성가(成家)된 것을 고치라고 한다. 이것이 공판장(共販場)에 가서 특등, 일등, 이등, 삼등, 등외품으로 평가된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사람이 글을 쓰는 것과 꼭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대개 한 때는 문학소년 시절을 거친다. 이때가 가장 독서열이 왕성하다. 모든 것이 청신(淸新)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이때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그의 포부는 부풀 대로 부풀고 재주는 빛날 대로 빛난다. 이때 우수한 작문들을 쓴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는 사색에 잠기고 회의에 잠긴다. 문학서적에서조차 그렇게 청신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혹은 현실에 눈떠서 제 각각 제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 철학이나 종교서적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직 침울(沈鬱)한 사색에 잠긴다. 최안기에 들어선 것이다.
한잠 자고 나서 고개를 들 때, 구각(舊殼)을 벗는다. 탈피다. 한 단계 높아진 것이다. 인생을 탐구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정신적으론 극도의 쇠약기다. 그의 작품은 오직 반항과 고민과 기피에 몸부림친다. 이때를 넘기지 못하고 그 벽을 뚫지 못하고 대결하다 부서진 사람들이 있다.
혹은 그를 요사(夭死)한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글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전에 읽었던 글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이제 이령(二齡)에 들어선 것이다. 몇 번이고 이 고비를 거듭하는 속에 탈피에 탈피를 거듭하며 자기를 완성해 간다. 그 도중에는 무수한 타락자들이 생긴다. 최후에, 자기의 모든 역량을 뭉치고, 글 때를 벗고, 자기대로의 세계에 안주한다. 누에가 고치를 짓고 들어앉듯 성가(成家)한 작가다. 비로소 그의 작품이 그 대소에 따라 일등품, 이등품으로 후세에 평가의 대상이 된다.
대개 사람의 일생을 육십을 일기(日期)로 한다면 이십대가 일령기요, 삼십대가 이령기요, 사십대가 삼령기요, 오십대가 사령기요, 육십대가 되면 이미 오령기다. 이제는 크든 작든 고치를 짓고 자기 세계에 안주할 때다. 이때에 비로소 고치에서 명주실은 풀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뽕을 먹고 삭이니만치 자기가 부단히 고무되고 고초하고 탈피해 가면 지어 논 고치[경지]만큼, 실을 뽑는 것이다. 칠십이든 구십이든 가는 날까지 확고한 자기의 경지에서 자기의 글을 쓰고 자기의 말을 하다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십대∼육십대로 예를 들어 말한 것은 육체적인 연령을 말한 것은 물론 아니다. 육체적인 연령에 대비해 보는 것이 알기 쉽기 때문이다.
우수한 문학가는 생활의 농도와 정력의 신비가 일반을 초월한다. 그런 까닭에 이 연령은 천차만별로 단축된다. 우리는 남의 글을 읽으며 다음과 같이 논평하는 수가 가끔 있다.
"그 사람 재주는 비상한데, 밑천이 없어서.
" 뽕을 덜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의 부족을 말함이다.
"그 사람 아는 것은 많은데, 재주가 모자라.
" 잠을 덜 잤다는 말이다. 사색의 부족과 비판 정리가 안 된 것을 말한다.
"그 사람 읽기는 많이 읽었는데, 어딘가 부족해.
" 뽕을 한 번만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기가 일회에 그쳤다는 이야기다.
"학식과 재질이 다 충분한데 그릇이 작아."
사령(四齡)까지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 아직 글 때를 못 벗은 것 같애.
" 오령기(五齡期)를 못 채웠다는 말이다. 자기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 참 꾸준한 노력이야, 대 원로지.
그런데 별 수 없을 것 같아." 병든 누에다. 집 못 짓는 쭈구렁 방송이다.
"그 사람이야 대가(大家)지, 훌륭한 문장인데, 경지가 높지 못해."
고치를 못 지었다는 말이다. 일가(一家)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양잠가에게서 문장론을 배웠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수필은 멀리 있지 않다. 나의 생활 곁에, 삶의 곁에 있다. 슬픔의 곁에, 눈물의 곁에, 기쁨의 곁에, 그리움의 곁에, 정갈한 고독의 한가운데에 있다.
삶과 가장 근접해 있는 문학이 수필이다. 원대하거나 화려하거나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다. 한숨이 나오거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나, 외로움이 깊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백지 위에 무언가 끄적거려 보고 싶어진다. 그냥 낙서일 수도 있고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 '끄적거림'은 별 의식 없이 나온 것이지만 마음의 독백, 마음의 토로로서 이 속에 자신의 인생과 느낌이 담겨진다는 뜻에서 중요하다. 이 끄적거림이 발전하면 삶의 기록, 인생의 기록이 되며,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 기록한다는 것은 자아(自我)의 발견이며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의식과 영원성을 수용하게 된다.
기록은 삶을 성찰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다. 기록하는 일을 통해 삶은 더욱 진지해지고 충실해지며 가치로워진다. 기록은 사실 그대로를 쓴 것이다. 체험(사실)에다 상상과 느낌을 보태어 재구성과 해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수필이다. 기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만, 수필은 사실에 상상과 느낌을 불어넣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담아 낸다. 우리 삶의 얘기가 그냥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수필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상상과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필은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일기, 고백, 기행, 감상, 편지- 어느 형식이든지 자유롭게 마음을 토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수필을 쓰기 위해선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과의 대화에 과장과 허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긴장을 풀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장신구도 떼어내고 화장도 지워버리고 홀가분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눕거나, 턱을 괴고 앉아 친구에게 마음을 토로하듯 쓰는 글이다. 애써 잘 쓰려는 의식이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도 없이―. 권위의식, 체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일체의 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 순수무구의 마음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에서 치장하고 수식하고 싶어 안달을 부리게 된다. 겨울 언덕에 선 벌거숭이 나무처럼 녹음· 꽃· 단풍도 다 떨쳐버린 맨 몸으로 보여주는 진실의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 수필이 '마음의 산책' '독백의 문학'이라 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문학임을 말한다.
수필의 입문(入門)은 어느 문학 장르보다 쉽지만 수필의 완성은 실로 어렵다. 성공한 인생은 많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작은 쉬웠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글이 수필이다. 시, 소설, 희곡 등 픽션은 작가와 작품이 일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논픽션인 수필의 경우엔 작가와 작품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경지에 따라 수필의 경지가 달라진다. 수필은 인생의 거울이므로 사상, 인품, 경륜, 인생관 등이 그대로 담겨진다. 심오한 사상, 고결한 인품, 맑고 따뜻한 마음, 해박한 지식, 다양한 체험이 수필을 꽃피우는 요소이고, 이런 인생 경지에 도달한다는 자체가 구도, 자각, 실천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이 아니라,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문학이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통한 의미와 가치를 최상으로 높이는 도구다. 수필을 쓰려면 무엇보다 겸허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꽃피우는 문학이므로 스스로 교만과 허위의 옷을 벗어야 한다. 마음속에 항상 자신의 영혼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깨끗이 닦아 두어야 한다. 마음속에 양심의 종을 매달아 두어서 불의나 탐욕의 손길이 뻗힐 때 스스로 자각의 종소리를 내게 해야 한다. 마음속에 맑고 깊은 옹달샘을 파 두어서 거짓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얻은 사람이라면, 진실과 겸허의 눈으로 말하고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마음속의 울림 그대로를 끄적거려 보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낙서라고 해도 좋다. 단 몇 줄의 문장을 만들고 점차 자신의 마음을 토로해 나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수필과의 만남을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습성을 가지는 일이 수필을 쓰는 첩경이 된다. 삶의 기록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① 체험의 서술
② 체험 + 느낌
③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④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 감동
①은 자신이 겪은 대로 쓴 것이어서 기록문에 불과하다.
② 수필이 되려면 체험과 느낌이 조화를 이뤄야 함을 말한다. 체험이 많고 느낌이 적을 땐 정서감이 부족하여 딱딱하게 느껴지고, 체험이 적고 느낌이 많은 경우엔 추상적이고 현실감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③의 수준이면 수필에 진입한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창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인생의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④의 경우엔 '감동'을 주문하고 있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나 인생의 의미를 일깨우고 읽는 보람을 안겨 주기 위해선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문학성의 핵심 요소이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수필 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과 의미 부여의 행위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의미의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 ― 이것이 수필을 쓰는 핵심이며 궁극적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체험의 중요성
서산대사(휴정)와 사명대사(유정)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종일 걷기만 하니 심심도 하여, 사명대사가 스승인 휴정께 제안을 했다.
'선생님! 심심한데 내기나 할까요?' 라고 '자네가 먼저 함세' 서산대사는 제자인 유정(사명당)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러자 유정은 '선생님 저기 검정소와 누렁소 두 마리가 풀밭에 누웠지요?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날까요?'라고 하자, 휴정은 '자네가 먼저 함세'라고 했다. 유정 즉 사명대사는 얼른 주역의 효(爻)를 뽑아보니 불화(火)자가 나오자,
'선생님, 누렁소가 먼저 일어날겁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스승인 휴정은 얼른 '아닐꺼어 얼'이라고 하는데, 검정소가 일어나고 곧 이어서 누렁소도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사명당은 기가 막혀서 '선생님, 주역의 효는 불화자인데, 누렁소가 먼저 일어나지 않고 왜 검정소가 먼저 일어나지요?'라고 묻자, 서산대사는 '자네 불도 안 피워보셨는가? 불을 피우면 먼저 검정연기가 나고 곧 이어서 누렁 불꽃이 올라오는게 아닌가. 그러니 검정소가 먼저 일어나자,
곧 이어서 누렁소가 따라 일어나는게지.'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불을 피워본 경험! 이는 문학에서는 체험이다. 청소년들은 아직 체험 즉 직접경험은 적지만, 그래도 독서나 듣고 보고 하여 알게된 모오든 직간접 체험도 있을게다.
이런 체험은 문학작품의 이해를 돕고, 창작에도 활용될 수가 있다.
청소년이 어른의 체험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쓰는 것은 오히려 참신하지도 신선하지도 못하다.
자기 체험의 범위내에서 이해하고, 관련체험을 끌어내어 쓰고저하는 작품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명당처럼 주역의 효에만 의존하면 경험한 바를 활용못하는 것이 된다.
작품의 이해 감상이나 창작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직간접체험의 활용이 어떤 이론보다 앞서야 한다.
좋은 글을 쓰는 법
좋은 글을 쓰는 법
1. 표현의 방법에 대하여
서양 문화가 흡수되면서 우리 말글도 어느 새 서양적인 것을 많이 받아들였다. 텔레비전, 컴퓨터 등과 같은 외래어가 그 중 한 예다. 그런가 하면 표현 방법도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가 전형적인 외래식 표현임은 영어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누 구든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표현의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엄연히 우리의 좋은 표현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남의 틀 을 빌려 쓰려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다.
○ 우리, 단 하나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세.
번역소설 ‘람세스’에 나오는 문장이다.
'단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어법상 틀리지 않지만 왠지 어설프다.
외국물을 먹지 않은 우리네 토박이들은 '한 가지 중요한 질문’ 이나 '중요한 질문 한 가지’라고 해야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쓰는 것, 그것이 우리 글을 잘 쓰는 첫 번째 비결이다.
아무튼 위의 글은 빙빙 돌려서 썼다.
그래야만 좀더 문아(文雅)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위의 글을 아래처럼 고친들 어색하다고 할 사람은 없다.
→우리, 한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세.
→내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겠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 같은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다.
그게 우리식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토종 표현이 더 감칠맛 난다는 신념을 갖고 이제부터는 토종을 사랑하도록 하자.
아래 몇 개의 예문을 보면서…….
○ 네 젊은이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 젊은이 네 명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네 명’, ‘네 사람’은 자연스럽지만 ‘네 젊은이’는 어색 하다. ‘한 토끼’만큼이나.)
○ 세 개의 날개가 달린 새를 보았다.
☞ 날개가 셋 달린 새를 보았다.
○ 한 개의 사과, 열 마리의 새
☞사과 한 개, 새 열 마리
2. 동일, 유사어의 반복에 대하여
한 문장 내에 같은 용어를 반복하거나 비슷한 뜻의 단어를 연이어 사용할 때가 있다.
불필요하게 반복된 성분은 군더더기처럼 느껴져 글의 흐름을 방해하고, 심하면 문법까지 어기게 된다.
같은 용어의 반복을 피하는 것도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가지 비결이다.
물론 반복이 필수적일 때는 할 수 없다.
○ 지금부터 저의 고향 소개를 부분별로 소개하겠습니다.(→고향을)
○ 좁은 국토를 잠식하는 묘지문제가 날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묘지가, 혹은 묘지의 증가가)
○ 명예훼손을 당했는데도 미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소송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증거 부족으로)
○ 참가 등록은 대표자가 직접 등록하여야 합니다. (→직접 하여야 합니다)
○ 처음 교육 담당에게서 전화 연락을 받았을 때 떠오른 것이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중 존칭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이었다)
○ 선택 전문 과정이라 정말 아무 부담 없이 왔는데 이런 글쓰기 시간은 정말 부담스럽네요.(→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 70세 이상 되는 어르신네도 5명이나 포함되어 있었고 아주머니, 어린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3. 남용되는 복수표현
우리말은 남의 말에 비해 단수와 복수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영어를 예로 들면 단어 뒤에 ‘s(es)’ 등을 붙여 복수임을 분명히 밝히지만 우리말은 복수의 개념이라고 해서 반드시 복수형접미사‘들’을 넣지는 않는다.
예컨대 “꽃이 피었다”고 하면 그 꽃은 한 개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언어생활에서 수의 개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한데, 근래 들어 우리 글에도 복수형 표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글쓰는 이들이 영어 등의 번역투 문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글은 ‘들’이 여러 번 들어가면 경우에 따라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러므로 꼭 필요한 곳 아니면 ‘들’의 중첩을 피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아래 예문은 어느 책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고침 글과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인지는 님들의 판단에 맡긴다.
○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기르는 데 적절한 사람들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기르는데 적절한 사람이 아니다.
○ 왕실 자녀들을 비롯한, 국가의 중추적인 직위에 접근할 만한 사람들의 자녀들은 그곳에서 엄격하고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왕실 자녀를 비롯한, 국가의 중추적인 직위에 접근할 만한 사람들의 자녀는 그곳에서 엄격하고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 우리의 동맹국들과 적국들의 언어를 배우고…….
☞우리의 동맹국과 적국의 언어를 배우고…….
○ 그곳에는 수천 마리의 새들과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그곳에는 수천 마리의 새와 물고기가 서식하고…….
○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몇 안 된다.
☞이것을 본 사람은 몇 안 된다.
4. -화하다 와 -화되다
◇최근에는 컨테이너 박스에 유사휘발유를 싣고 다니는 등 유사 휘발유 제조와 유통이 조직화, 지능화하고 있다.
3월5일자 D일보 '독자의 소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문장의 끝부분'지능화하다'가 어법에 맞을까.
우선 글쓴이가 '-화하다'로 쓴 이유를 훔쳐 헤아려보자.
지금도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이지만,우리말 문법, 특히 어법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 중 비교적 나이가 든 이는 한자어 '화(化)'라는 단어의 음훈이 '될 화'이므로 '-화되다'라고 표현 하면 '되다'가 겹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화되다'는 '-화하다'로 고쳐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는 논리의 모순이다.'화(化)'가 비록 한자어이고, 훈이 '되다'이지만 그것이 접미사'-되다'와 같은 성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화'가 '되다' 말고 '변하다','변화하다'라는 훈으로도 쓰인다는 점을 상기하면 좀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더욱이 변화(變化)라는 단어를 보더라도 '변화하다','변화되다'
양쪽 다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실 '-화하다'와 '-화되다'는 어느 한쪽만 택해야 할 성질의 짜임이 아니다.
글의 구성,즉 결구에 따라 용례가 달라지는 것이다.
다음 예문을 보자.
◇서울시는 그 지역을 공원화했다.
◇그 지역은 서울시에 의해 공원화됐다.
◇회사는 유통망을 조직화했다.
◇회사의 유통망이 조직화됐다.
위의 두 예문에서 보듯,'-화하다'는 '공원,유통망'이라는 명사를 타동사 형태로 바꾸어주고, '화되다'는 피동사 형태로 바꾸어준다.
그러므로 '-화되다'라는 표현이 틀린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맨 위의 예문도 '조직화,지능화되고 있다'고 쓰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