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 좋은 시조 총평>
허천나게 탐한 시간의 기색들
- 『다층』의 ‘좋은 시조’ 와 만나다 -
정용국
1. 들어가면서
한 해를 마감하며 시조단에도 여러 곳에서 일 년 동안의 결실을 거두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시조시인협회는 새로 창간한『시조미학』을 반 연간지의 형태로 확장하였으며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에서는 이미『2012 올해의 좋은 시조』130여 편을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도서출판 ‘작가’ ‘삶과꿈’ 등에서도 자유시와 함께 2012년 ‘좋은 시조‘를 선정하여 책으로 묶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일련의 작업들은 同時的으로 한 해의 시조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효과와 함께 通時的으로 볼 때는 시조문학의 중요한 자료로 시조의 변천과정이나 작품 성향 등을 파악하는 현대 문학사적 준거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가진다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계간『다층』이 기획하는 이 지면은 상당한 객관성을 가지는 선별작업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전국적으로 많은 선고위원을 확보하였고 그들이 천하는 다섯 편들이 모여 다득표 순으로 정리된 열 편의 결과물은 작품성으로 보아서 한국 시조단의 최상위급 작품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층』이 선별한 올해의 좋은 시조는 거의 등단 20년이 넘는 중견급 이상의 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종 선정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 선고위원들의 추천 작품을 다득표 순을 취합해 특정한 배제나 예외 규정 없이 선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선정 방법과 운용 세부 기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필자의 의견을 피력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선정된 열 편의 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작품 한 편 씩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두어 편씩 묶어서 이야기해도 좋을 만큼 상통하고 어울리는 소재나 이야기 흐름이 감지되었다. 열 편을 작품을 다섯 부류의 흐름으로 묶어 다뤄보고자 한다.
2. ‘그러나‘ 묻어 둔 꼬깃꼬깃한 고백들
인생의 과정을 크게 나누어 보면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이 많이 연장되어 각 기의 기간들이 길어지기는 하였겠지만 이 대강의 분별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각각 이 시기를 지나가면서 나름대로 특이하고도 주관적인 소회와 상처를 지닌 채 앞으로 나아간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인생의 시간들을 거치며 만족하고 경이로운 결과 보다는 늘 부족하고 회한이 가득한 일들로 가득한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는 언제나 아쉽고 아련한 감회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여기 과거의 이야기가 가득한 시 두 편을 펼쳐본다.
튜브로 흘러드는
미음
삼백그램
세상의 늦저녁을 또 그렇게 건너신다
시늉만
입술에 남았다
숟가락 없는 식사
이미
부러진 죽지
입맛인들 남았을까
먼 곳에 눈을 얹고 부여잡은 이 하루도
눈물로 크렁크렁한,
설거지의
시간일 뿐
- 이승은「그러나 생일」전문 (『문학사상』 2012. 8월) -
이승은의 시「그러나 생일」은 언뜻 스쳐 읽으면 병상에서 생신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현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의 주 관점은 ‘그러나’ 앞에 생략된 ‘병상 이전’ 의 이야기이다. 부사 ‘그러나’ 는 상반되는 앞뒤의 내용을 연결하거나, 양보적 대립관계, 조건을 강조하여 제시할 때 등 서너 가지의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逆接의 기능을 말할 때 쓰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그러나 생일」은 매우 상징적이며 역설적인 이야기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시의 제목으로 파격이라 할 수 있는 ‘그러나’ 앞에는 어머니와 가족들의 일생이 다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기르며 보낸 풋풋했던 젊은 시절, 서넛이나 되는 자식들의 등록금과 뒷바라지로 휘청거렸을 중년기, 하나 둘 씩 결혼을 시켜 내보낸 장년기를 지나 이제 어머니는 ‘숟가락 없는 식사’를 받고 ‘설거지의 시간’ 앞에 누워 계신다. 시인은 ‘그러나’를 통해 어머니의 다정하고 건강했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병상 이전’을 뼈저리게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생일 선물에 울컥하시던 일이며 그날 온 가족이 어울렸던 노래방에서 고운 목소리로 들려주셨던 어머니표 유행가 한 구절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에는 ‘세상의 늦저녁을 또 그렇게 건너시’는 어머니와 ‘눈물로 크렁크렁한’ 딸의 끝도 없는 이야기가 진솔하게 秘藏된 눈물샘이 독자의 누선을 자극하고 있다.
아마존강 벌새가 밀어올린 둥지처럼
구례 오산 꼭대기 아슬아슬 사성암
이른 봄 등 떠밀려와
기와불사 훔쳐본다
‘정리하려 했지만......
그냥 좋아할래요’
발밑에 세상을 버린 고승들 수행처에서
건강도 합격기원도 아닌
사랑고백이라니!
그래, 이 젊은 것들아
간절하면 이루리라
어느 가슴엔들 그런 사랑 없겠느냐
꼬깃한 나의 고백도 불전함에 두고 간다
- 문순자 「아슬아슬」전문 (『시조세계』 2012. 여름) -
문순자의「아슬아슬」은 현실에서 포착한 작은 일상의 한 조각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자신의 먼 과거 한 순간을 담백한 스케치로 그려내고 있다. 자칫 허술하게 꾸려질 뻔했던 세 수의 구조는 제목의 重意的 긴장감을 통하여 세대 간의 에스프리(esprit)를 비교적 순탄하게 엮어내고 있다. 아슬아슬한 절벽에 간신히 걸터앉아 있는 사성암의 자리와 기와에 적혀있는 ‘정리하려 했지만/ 그냥 좋아 할래요’라는 웃지 못 할 발원문이 바로 그것인데 이 둘을 묘사하고 있는 ‘아슬아슬’ 의 중의적 구조가 우스우면서도 세대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의 풍광을 관조적 시각으로 마무리 해내고 있다. 사성암을 묘사하고 있는 ‘아마존강 벌새가 밀어올린 둥지처럼’ 의 생경함과 셋째 수 초·중장의 통속성이 자못 거슬리지만 ‘이른 봄 등 떠밀려와’ 불전함에 두고 가는 시인의 ‘꼬깃한 나의 고백’ 으로 표현된 묵직한 주제와 재치 있는 표현이 세 수를 관통하면서 전편을 이끌어 가는 탄력을 획득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어느 누군들 자신의 현실과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랴만 시인들이 지고 가는 현실들 또한 세상의 초동급부들 누구나 부딪치는 일들일 것이니 독자들은 이 시편들을 통하여 많은 위무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아 갈 것이다.
3. 물상과 생명에 흔들리며 솟는 ‘산 하나’
시인은 삶의 여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고민과 애증에서도 많은 소재를 취하지만 세상에 객체로 존재하는 물상과 뭇 생명에서도 무한한 외경심과 이채로운 발상을 통한 다양한 정령들과 접하게 된다. 그 물상과 생명들은 시인의 영혼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무한한 에너지와 희망과 기쁨을 전하게 되는 바 독자가 희열을 느끼는 높은 경지를 체험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문학적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여기 소개할 두 명편은 물상과 생명의 정령들을 체득하게 된 시인의 선험들이 여러 독자들을 이끌고 험난하지만 ‘산 하나’ 치솟고 흔들리는 경이로운 심경을 억누르며 고산준령을 넘게 할 것이다.
담고 싶은 것이
어디 술뿐이었으랴
타오르는 불꽃으로 산 하나쯤 솟는 생각
천년을
동여매리라
무명 끈 달아놓고
세상일 눈 못 뜨는
청맹과니 후생 앞에
들병이 눈웃음 같은 달빛 슬쩍 건네주며
등짝을
후려치고선
저 늡늡한 뒤태라니
*대한민국 보물 1060호
- 신필영 「백자철화끈무늬병*」전문 (『시조시학』2012, 여름) -
이 시를 읽기 전에 우리는 먼저 대한민국 보물 제1060호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한데 시의 제목이 낯선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시제는 보물 제1060호의 정식 명칭인데 꼼꼼히 살펴보면 그 이름이 확연하게 파악될 것이다. 우선 이 보물은 백자이며 쇳가루를 재료로 하여 무늬를 그려 넣은 후 고온에서 부식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 무늬가 끈의 모양을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이다. 자 이것을 종합해 보면 ’끈처럼 생긴 무늬를 철화의 방법으로 새겨 넣은 병 모양의 백자‘ 라고 인식하면「백자철화끈무늬병」이 어렵지 않게 입에서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 보물의 형상을 눈으로 일별하는 것도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6세기 조선시대에 제작된 이 병은 백자 특유의 풍만한 양감과 유려한 곡선미를 보여주는 조선을 대표할 수 있는 백자이며 특히 병의 목에서 시작되어 불룩한 병의 아랫부분을 거침없이 그어 내린 끈의 힘찬 선이 일품인데 특히 끈의 마지막 부분을 한 번 감아서 마무리한 기교야말로 이 병을 보물로 만든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신필영의 시안은 정말 ‘늡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보물인 백자는 왕실이나 최고의 양반들이 사용하는 종류임에 틀림이 없으며 작가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인데 시인은 이 병을 과감하게 ‘세상일 눈 못 뜨는 청맹과니 후생 앞에’ 내어 주고 최고급 술병으로 쓰였을 용도를 ‘들병이 눈웃음’에 견주는 파격의 속 깊은 배려를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자는 인격화 되어 그늘에 사는 저잣거리 백성들을 격려하고 등짝을 두드려주는 믿음을 주며 ‘산 하나 쯤 솟는 생각’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결국 물상은 시인에게 체화된 후 독자의 마음과 정서적 교감을 확산시켜 내며 높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박물관에 점잖게 놓여 있던 대단한 보물 하나를 독자의 품에 안겨준 시인의 늡늡함으로 백자철화끈무늬병은 모든 무지렁이들의 가슴을 달뜨게 하였다. 신필영의 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종결어미의 생략도 시인과 독자 사이의 교감을 배가하려는 의도로 여겨지는데 생각이나 행동을 단정 짓는 마무리를 피함으로서 더 진전되고 확장된 상상력의 유도를 꾀하려는 의도로 파악할 수 있다.
변방의 음습한 땅 근본도 모르는 꽃
함부로 잎 핀 것들 이름을 호명할 때
평생을 햇볕 그리며
사는 한을 아느냐
불구의 생 견디는 외눈박이 유령의 꽃
몸과 맘 둘 데 없어 알몸을 내보인 채
화두를 안고 서 있는
고행의 뜻 묻지 말라
한 뼘의 자존 강한 오만한 요정의 꽃
텃새들 이야기 속 남은 봄 다 보내고
마침내 적멸을 위해
산 하나를 흔들었다
- 오종문「나도수정초」전문 (『화중련』2012, 상반기호) -
나도수정초는 여러해살이풀로 산지의 그늘지고 습한 곳에 자생한다. 특이한 점은 잎이 투명하여 광합성이 불가능한 부생식물로 썩은 식물체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식물이다. 광합성이란 녹색 식물이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흡수된 이산화탄소와 수분을 유기물과 산소로 변환시키는 작용,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흡수된 이산화탄소와 수분으로 유기 화합물을 합성하는 것인데 나도수정초는 식물의 가장 근본적인 광합성이 불가능하다는 결정적 하자를 지닌 식물인 것이다. 시인의 날카로운 안목이 잡아 챈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그래서 나도수정초의 하자를 더 깊게 부각시킬 부정적 의미를 지닌 단어와 문구들이 연달아 출현한다. (변방, 음습, 근본도 모르는, 함부로 잎 핀, 불구의 생, 외눈박이 유령의 꽃, 몸과 맘 둘 데 없어) 등이 시 전체를 압도하며 의문형과 명령형 종결어미로 두 수의 종장을 맺고 있다. 즉 나도수정초의 태생과 상처에 대한 강열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체 분위기를 급강하 시키며 곤두박질친다. 이렇게 불안한 기류가 연출되고 있을 때 돌연 마지막 수를 통해 ‘자존’ ‘요정’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구사하며 반전을 도모하다가 결국 ‘산 하나’를 흔들며 적멸에 들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작가의 의도적인 구성에 따라 극적인 대미를 장식하며 드라마틱한 시의 분위기를 유기적으로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앞의 신필영 시인이 물상을 통한 교감이었다면 오종문 시인은 ‘불구의 생’을 지닌 생물을 통한 교감으로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이 두 작품에 ‘산 하나’가 등장하고 있는데 너무도 유사하게 시의 핵심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주도적 역할을 해내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고 하겠다.
4. 불그레 두근거리는 어둠의 솔기들
앞서 살펴본 작품들이 동적인 밑그림을 가지고 인생의 핍진함과 희열을 격정적으로 노래하였다면 이번에 소개할 두 작품은 이와는 사뭇 다른 전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소소한 사물의 변화와 일상에서 이끌어 낸 아주 정결하고 명징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또 다른 시조의 위상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믐달,
선지피 닿은
서늘한 입김 있어
짓이긴
핏물 머금고
첫사랑 기다린다
불그레 두근거리는
손톱 위의
봉숭아물.
- 한분순「손톱에 달이 뜬다」전문 (시조집『손톱에 달이 뜬다』2012) -
다분히 소녀 취향의 풋풋하고 여린 정감이 담겨 있다고 느껴지지만 ‘선지피 닿은 서늘한 입김’에는 이와는 상반된 연륜이 깊이 느껴진다. 단수의 짧은 행간에서 속 깊고 노련한 연륜과 아주 원초적인 강렬함이 뒤섞여 마치 단아함 속에 불을 머금고 있는 오똑하면서도 볼이 도톰한 조그만 청화백자를 보는 듯하다. ‘불그레 두근거리는’에서는 동사 앞에 시각적 이미지의 부사를 구사하여 공감각을 자극하는 재미를 더해 놓은 것이 독특하다. 이러한 장치들은 해가 바뀔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첫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통념적인 모습을 넘어 조금 더 강한 손톱달의 형상을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손톱에 남아 있는 봉숭아물이라는 작고 소박한 일상에서 깊은 사유를 길어 올린 이 작품은 어떤 커다란 감정의 증폭이나 급변하는 현실상황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있다. 특히 여성 작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사유적 시풍은 자아나 사물의 근본에 몰입하여 그 본질적 의미들을 관조하는 특색을 지닌다. 다음에 살펴 볼 박명숙의 작품도 나팔꽃에 관한 깊은 관찰과 사유로 건져 올린 결과물이다.
첫새벽이 다가와
찬물을 끼얹자
팽팽히 귀를 매둔
어둠의 솔기가 터졌다
보랏빛 벨벳으로만
안을 덧댄 어둠이었다
여름밤은 달아나고
어둠의 딸 태어나
넝쿨손 뽑아올리며
혈통을 증거한다
한 뼘씩 허공을 디디며
아침에게로 기어간다
- 박명숙「나팔꽃」전문 (『현대시학』2012, 5월호) -
시인은 늘 우주의 만물과 교감하고 대화하며 상상력을 키운다. 사소한 돌멩이 하나가 우주이고 시인의 손길과 마음은 그 구석까지 깊고 고르게 미치기 위해 성능이 우수한 안테나를 세우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지천에 피는 것이 나팔꽃이지만 시인은 그 꽃 하나에 집중하고 마음을 준다. 그 때 꽃은 새롭게 피어나고 또 하나의 위상과 자격과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두 수로 구성된「나팔꽃」은 ‘팽팽히 귀를 매둔 어둠의 솔기‘ ’보랏빛 벨벳으로만 안을 덧댄 어둠‘ 등의 빼어난 은유로 가득하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수에서는 ’어둠의 딸‘ ’혈통을 증거한다‘등의 다소 관념적이며 밋밋한 서술어들 때문에 첫 수의 빛이 조금 바랜 느낌을 받게 되지만 ’한 뼘씩 허공을 디디며‘ 아침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나팔꽃에게 또 하나의 새롭고 경이로운 등가적 사유 하나를 보태고 있다. 이러한 시인들의 사려 깊은 상상력들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가치와 위안은 독자들에게도 전해져서 그들도 새롭게 더 자유롭고 깊은 사유 앞에 서게 됨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 오십 벼랑에서 얼룩진 나이까지
시를 읽으면 대체적으로 시인의 연배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시 속에 전개되는 상황을 근거로 하지 않더라도 시인이 즐겨 쓰는 시어나 생각의 둘레를 더듬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링블링」「당신은 스마트한가요」이러한 제목의 시들은 20대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겠고 ‘나의 수의엔 기필코 주머니를 달 것이다’ ‘이름에 묻어나는 그늘을 닦아 낸다’ 등 연륜의 무게가 잔뜩 실린 시어가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은 나름대로 세월의 무게가 듬뿍 느껴진다. 여기 소개할 박권숙 시인은 50대이고 유재영 선생은 60대인데 시 속에 녹여 낸 나이의 어울림은 진솔하고 자별하기까지 하다.
1
내 오십 벼랑까지 내몰린 소 한 마리
밤마다 은월도에 꺾어진 우각 한 쪽
빛나는 호를 그리며
허공 속에 던져진다
2
죽음을 붙들고 빛이 일어서는 법을
다시 숨을 부풀려 첫발을 딛는 법을
새파란 실눈을 뜨고
가을밤이 보고 있다
- 박권숙 「초승달 환상곡」전문 (『문학사상』2012, 9월호) -
「초승달 환상곡」은 앞에 살펴 본 오종문의『나도수정초』와 흡사한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비탄과 희망의 사이에서 안타까운 자맥질을 하고 있다. ‘오십 벼랑’이라는 표현이 50대에서는 어울리지 않으나 박시인의 경우 자신의 지병이 가져온 숙명적 ‘벼랑’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감지된다. 시 한 편에 번호를 붙여 구분하는 경우 대체로 시간, 배경, 주체 등이 변할 경우를 이르는 경우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복합적으로 바뀐 상황을 전개하고자 한 것 같다. 1의 경우가 ‘오십 벼랑까지 내몰린 소 한 마리’에 대한 비관적임 절명의 위기라면 2는 ‘빛이 일어서는 법’과 ‘첫발을 딛는 법을’ 온몸으로 극복해 나가는 새로운 상황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소 한 마리’가 주인공이라면 ‘가을밤’은 절대자가 아닐까. 또한 ‘새파란 실눈’은 절대자가 보내오는 위엄과 희망의 메시지로 보여진다. 마치 深牛圖에서 표현하고 있는 득도의 과정처럼 두 수의 전개과정은 긍정적인 마무리를 향하고 있다. 박권숙의 이러한 마무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시가 튼튼해 참 다행이다.
1.
내 또래 그 가을을 보고 싶어 찾았더니 귀룽나무 어디에도 친구는 간 데 없고 파랗게 여문 하늘만 끌어안고 왔습니다
2.
열매주 한 병 들고 다시 찾은 그 가을 어느새 그도 나도 얼룩진 나이라서 받아든 가랑잎 무게 도로 내려놓습니다
- 유재영「가랑잎 무게」전문 (『문학사상』2012, 9월호) -
자신의 나이를 받아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자신을 노인 취급하고 차별하는 것을 처음에 자기 스스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知天命이라는 구절이 공연히 나왔겠는가. 그것은 어쩌면 至天命일지도 모른다. 다다르면 알게 되는 것이니 다를 리 없다.
위 작품도 각각 번호를 붙여 두었다. 1의 상황이 인간이 안고 있는 숙명적 의문을 ‘끌어인고 왔습니다’라면 2는 의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고 이제 화두를 조용히 ‘도로 내려놓습니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열매주 한 병’과 ‘얼룩진 나이’라는 시어가 이 모든 상황을 풀어주고 있다. 60중반을 ‘얼룩진 나이’라 한 것은 역시 유재영표라 할 수 있다. 이 표현은 ‘끌어안고’와 ‘내려놓습니다’를 완벽하게 해결하며 가장 중요한 핵심어로 자리하고 있다. 60년 이상을 살다보면 이런저런 얼룩이 들지 않고 이 험난한 세상을 온전하게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니 얼마나 융숭한 시어인가.
6. 허천나게 탐한 시간의 기색
박기섭의「허천난 봄」에서 ‘허천나다’는 본래 ‘몹시 굶주려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수자의 ‘白露에서 寒露까지’의 핵심어가 ‘탐하다’라면 이 두 편의 시야말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들어 있을 것이다. 두 편의 시가 ‘탐하다’라는 공통된 주제어를 가지고 있어서 재미있지만 정작 독자들이 눈여겨 볼 것은 말 부림에 관해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도 아주 쏠쏠한 흥미를 안겨 줄 것이다. 특히 장의 구분과 함께 행과 연의 가름에 留意하고 對句와 반복법의 상관관계에 주목해 보는 것은 두 편의 시를 감상하는데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대목이다.
흰 이슬을 찬 이슬로 수식어를 다듬는 건
시간의 기색 위에 소름을 앉히는 일
먼 별의 명도를 재며
백로가 털을 고르듯
몸에 익은 온도의 관형어를 바꾸는 건
기와 색을 탐하는 오래된 습관이다
제 별의 채도를 높이며
가을의 샅을 헤매듯
- 정수자 「白露에서 寒露까지」전문 (《『현대시학』》2012, 11월호) -
백로와 한로 사이는 약 한 달의 간격이 있다.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으로 이어지는 이 시간들은 더위를 처분하고 흰 서리가 내리며 밤낮의 길이가 같아 졌다가 찬 이슬이 서리로 바뀌는 오롯한 가을의 시간들이다. 이렇게 절기가 바뀌는 것을 ‘시간의 기색 위에 소름을 앉히는 일’이라고 했으니 지구와 태양의 각이 점점 기울어지면서 해가 짧아지고 결국 추워져서 ‘소름’이 돋는 시기가 오는 것을 이름일 것이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몸은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따듯하고 열량이 높은 음식을 취해야 하고 옷도 두툼한 것으로 바꿔주어야 하며 아궁이에도 많은 불을 넣어야 견딜 수 있는 것이 바로 몸이다. 시인은 아마 이렇게 추위를 이겨내는 많은 방법을 ‘탐하다’로 여긴 듯하다. ‘貪하고(탐욕) 探하며(탐구) 眈하고(몰입) 耽해야(탐닉)’ 비로소 몸도 정신도 따듯해 질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문화적 유기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가’라는 복합적인 명제에 도달한다. 위의 네 가지 ‘탐‘은 결국 ’집중하다‘와 맞닿아 있는데 가을이야말로 모든 생명들이 겨울준비로 바쁘게 결실을 맺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추위를 이기고 몸을 보호는 일에서부터 긴 겨울밤에 삭힐 깊고 묵직한 사유와 화두를 하나씩 들고 동안거에 임하기까지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가을의 샅을 헤매듯‘ 몸을 재게 부려야 하고 덩달아 부지깽이까지 바쁜 계절이 가을이다.
단 두 수의 시조 안에 정렬된 시어들이 단아하고 가지런하다. ‘수식어를 다듬는 건’과 ‘관형어를 바꾸는 건’이 곱게 대비와 반복을 이루고 ‘먼 별의 명도를 재며’와 ‘제 별의 채도를 높이며’도 아주 좋은 짝을 이룬다. ‘백로가 털을 고르듯’ ‘가을의 샅을 헤매듯’도 종결어미를 생략하므로 인해 오랜 여운과 두터운 상상력을 추스르게 한다. 첫 수애 쓴 ‘기색’을 둘째 수에서 다시 ‘기와 색’으로 풀어 쓴 반복도 색다른 맛을 주고 있다.
뉘더러 물어보랴
살구나무
살구꽃값
살구꽃 아니라면
복사나무
복사꽃값
올봄도
떼먹을까보다
그냥 못 본 척 할까보다
꽃값 받아가라고
재우친들
나만 섧지
삭칠 새경이라도
있다면
또 모를까
허천난 그리움 아니면
허천난 줄
뉘라 알리
- 박기섭「허천난 봄」전문 (『문학사상』2012, 9월호) -
먼저, 이번에도 박기섭의 시를 읽으며 사전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그래야 했다. ‘허천난’을 ‘허벌나다’의 뜻으로 대강 짐작하였으므로 틀렸고 ‘삭칠’을 ‘削치다-값을 깍다’로 이해했으므로 그렇다. 다행인 것은 ‘재우친들’을 ‘재쳐’로 알아들었으니 그나마 삭쳐도 될 일이었다. 구린 입은 안 떼는 것이 좋지만 감출 수 없는 일이고 사실이 늘 그랬다. 처음에는 너무 하다 싶어 속이 치밀었는데 그것은 내 사정이었고 내 잘못이었다. 이런 해박한 시어를 구사하는 것이 내 속 치밀 일이 아니라 그것은 박기섭이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결실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맛깔난 시어들은 그의 시를 튼실히 지탱해주는 기둥이요, 주제를 폭 넓게 확산시키고 너그러운 그늘을 만들어 주는 촘촘한 서까래다.
둘째로 박기섭은 많은 시편들을 통하여 우리말의 부림과 조화로운 운용에 대하여 고민하며 실전에 다루어 왔다. 그간 그가 보여준 다양한 대구와 반복, 도치의 기법은 지난하리만치 끈질기고 집요한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꿈꾸는 반도」「5월」「꽁치와 시」「빛이 때리는 대밭처럼」등의 작품에서 선보인 대구와 반복법은 여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 필자는 별도의 지면에 집중적으로 정리해 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두 수로 구성된 이 작품의 장 배열을 살펴보면 여간 섬세하게 공을 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살구나무/ 살구꽃값) (복사나무/ 복사꽃값)에서 둘은 구 안에서 반복이 적용되고 다시 두 구는 유연하게 대구를 이루며 초·중장을 형성한다. 이 작품에서는 (3,4/ 4/ 4)로 장을 배열하였는데 이는 수시로 (3/ 4/ 4, 4)나 (3/ 4/ 4/ 4)등의 행 구분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두 수의 종장에서 첫 수는 (3/ 6/ 5,4)로 둘째 수는 (3,6/ 4/ 4)의 변화를 주어 평이한 중복을 피했다. 또 그 종장 안에(허천난 그리움 아니면/ 허천난 줄/ 뉘라 알리) 다시 ‘허천난’을 반복하며 제목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박기섭의 대구와 반복법은 자연스런 음보를 제일의 덕목으로 여기며 입말의 살가움을 배가시키고 주제와 소재를 도드라지게 하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한다. 혹자는 이런 방식들이 누구나 시도해보는 것이라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의 첫 시집인『키 작은 나귀 타고』에서부터 기발하고 창의적인 갖가지 다양한 모색(주어와 서술어를 다양하게 도치해 본다거나 휴지 없이 글자를 다 붙여보기도 하고, 조사마저 행 가름을 해보고, 형상을 만들어 글자를 채워보기까지)을 현재에 이르기까지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조를 설명하거니 소개하면서 막연하게 (3,4,3,4)의 보법을 말하지만 필자는 이 음보 속에 그야말로 누천년 이어진 한민족의 총체적 특성이 담겨있다고 본다. 인간이 태어나 문자를 습득하기 이전 어머니의 말을 듣고 구사하는 ‘母語’에서부터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우기까지 또 온갖 방면의 전문용어와 사투리, 외래어를 익히고 사용하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는 시조의 그 음보가 가장 편하고 몸에 맞는 ‘대표적인 기준‘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언어에서 두 글자로 이루어진 명사와 네 글자의 서술어가 주종을 이루는 것이 시조 음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만약 위 시에서 ’삭칠 새경이라도/ 있다면/ 모를까‘라고 표현했다면 얼마나 헐겁고 맛이 덜 했겠는가. ’또‘ 한 자의 위력, 즉 3,4음보의 힘은 바로 이런 곳에서 입증된다. 다시 암송해 보자. ’삭칠 새경이라도/ 있다면/ 또 모를까‘ 아마 박기섭은 여기까지 패를 두어 보고 이 시에 ’또‘를 박아 넣었을 것이 분명하다. 시 한 편에서 동어를 두세 번이 아니라 대 여섯 차례나 반복(「빛이 때리는 대밭처럼」의 경우)하면서도 그 음보가 흔들리지 않고 지루하지 않으며 읽을수록 맛을 더하는 시를 구사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이는 다분히 박기섭이 이루어 낸 獨功의 대가이다.
7. 글을 마치며
계간『다층』이 선정한 열 편의 준작들을 살피는 일은 더없이 행복한 도정이었다. 더구나 국토의 최남단 제주도에서 발간하는 잡지임에도 꾸준히 시조에 많은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고 늘 焦思하는 배려를 생각하며 늦은 청탁이었지만 열과 성을 다하려 애썼다. 열 편의 작품을 다섯 가닥으로 잡아 두 편 씩 모은 것은 편편을 읽다가 작품의 주제와 소재 또는 시점 등을 고려해 짝을 맞춰 본 것인데 우연 치고는 제법 잘 맞아 떨어질 만큼 상통하는 맥이 잡혀 다행이었다. 열 분의 선배님들 작품을 읽고 나니 등단 경력을 지켜내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글을 마치기 전에 계간『다층』에 ‘좋은 시조’ 선별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먼저 올해 선정된 시인들과 작년에 선정되었던 시인들이 대부분 중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작품의 수준으로나 시인들의 면면에 하자가 있는 분이 있어서 드리는 말이 아니다. 해마다 선정되는 시인들이 중복됨으로 인해 기획특집의 신선도가 저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휴면제(한 번 선정된 시인은 몇 년 선정에서 제외하도록 제도화 하는 것)를 도입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해 주실 것을 건의한다. 또 하나는 선정된 시인의 등단 경력이 대부분 20여년이 넘는 중진급 이상만 선정되는 것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등단 경력 별로 선정자를 배당(10년이하 2명, 10년 이상 20년 미만 4명, 20년 이상 4명)하는 적절한 기준을 설정하여 반드시 경력이 많은 시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게 배려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
올해 선정된 작품 중 일곱 편이 두 수로 된 것들이었다. 세 수 짜리는 두 편, 단수는 한 작품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대체적으로 네 수는 되어야 호흡과 구성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시조의 본령에 점점 다가가는 단형화에 더 접근한 셈이다. 이러한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추세를 주시해 볼 일이다. 계간『다층』에서 과문한 필자에게 좋은 시조를 살필 기회를 제공해준 것에 감사드리고 아울러 선정된 열 분의 시인들께 축하와 경의를 함께 올리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