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수필은 있어도 문학은 없다?
김양헌(문학평론가)
『대구문학』2002년 겨울호에는 이 외에도 열네 분의 수필이 실려 있다. 사람살이의 애절한 사연, 여행에서 얻은 견문, 일상의 사소사에서 깨달은 생의 의미등을 담고 있는 작품들 모두 나름대로 감동을 주는 바가 있다. 대개의 작품들이 수필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세계를 무리없이 표현하였고,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 또한 가지런한 편이어서 비평의 대상이 될 만한 특이한 사안을 찾기는 어렵다. 십여 년 전부터 간혹 읽곤 했던 수필이라는 것의 느낌이 편안하게 다가올 따름인데, 이것은 아마도 별반 티나지 않는 형식에 일상적인 정서와 평이한 인식이 실려 생겨나는 도덕적 당위성 때문일 터. 이런 편안함이나 잔잔한 감동이 필요없는 정서는 아니나, 예술적·문학적 가치와 연관지어 보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필자의 식견이 좁은 때문인지 몰라도, 수필은 30여년 전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나 지금 작품이나 거의 변한 게 없는 듯 하다. 혹자는 이것을 수필의 장점으로 내세울지 모르겠지만, 삶의 양식이 현저히 달라지고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예술로서의 의미는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이다. 현대 예술과 문학의 본질은 보편성과 항구성을 담보하면서도 끊임없이 기존의 인식과 형식을 허물고 존재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수필이 문학과 예술의 한 하위 갈래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안주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필자가 읽은 작품들의 내용이나 형식은 김규련, 김진태, 정혜옥 세대가 수십 년 전에 이루어 놓은 수준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규보나 박지원 같은 더 옛날 사람들의 작업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쓴 글은 당대 의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삶이 만나 이루어진 양식이다. 이후에 나온 후배들은 마땅히 그들의 작품을 역사적, 문화사적으로 이해하고 그 한계를 극복한 자리에서 글쓰기를 해나가야 예술가로서의 존재 의의를 지닐 수가 있다. 그러나, 최근 10여년 사이에 등단하여 활동하는 신진들의 글을 보면, 문학사나 수필사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고 오로지 수필이란 틀에 잘 맞추려는 안타까운 욕망만 비칠 따름이다. 문학사는 잘 쓴 작품들을 단순하게 나열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첨예한 정신의 변화 과정에 대한 심오한 통찰의 기록이다. 몇 십 년 전 양식을 되풀이 베끼기만 한다면 그것을 어찌 문학이라 하겠는가?
물론, 수필이 문학의 주류에서 뒤쳐진 게 대구 지역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중앙에서 발간하는 수필 전문지의 작품들도 예술성의 측면에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오늘날의 소위 수필가는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수십 년간 인간과 세계에 대해, 진리와 예술에 얼마나 치열하게 탐구해 왔는지 거의 모르고 있고, 그 성과나 잘잘못을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듯하다. 당연히, 예술사적 의미를 지니며 현대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작품을 생산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문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 잡지가 수필을 싣지 않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이다. '지금' '여기'에서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문학과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는 물음과 맞서 싸우지 않는 글은 요행히 수필은 될 지 몰라도 문학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없는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호사가들의 대중지향적 고상함과 글쓰기에 대한 사적 욕망을 충족해줄 뿐이다.
수필이 이렇게 일상적 귀족주의라는 반역사적이고 비예술적인 퇴행성의 갈래로 전락하기 이전에도 문학의 중심부에 진입한 적은 없었다. 수필이 오래 전부터 산발적으로 존재하긴 했지만 문학의 한 갈래로 인정된 것은 서구의 문학 이론이 들어온 뒤의 일이다. 일제시대 부터 1960년대까지 많은 작품이 창작되고, 20세기 이전의 문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경기체가나 가사 등이 독자적인 교술 갈래로 부각되면서 수필도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수필은 늘 변방에 머물렀고, 1960년대 이후 계속 퇴락의 길을 걸었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수필집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 비전문가의 산문집이 더 우수한 문체와 깊이 있는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필가와 달리 그들은 그들은 자기가 잘 아는 전문분야를 집중적으로 써내면되기 때문에 깊이가 있게 마련이다. 보통 사람도 삶의 절실함이 있기 마련이어서 문장을 만들 줄만 알면 누구나 수필 한 두 편 정도는 잘 쓸 수가 있다. 그러나, 수필가는 어떤 소재가 주어지더라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글을 지속적으로 써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이러한 현상은 수필가로 등단하는 절차를 의미없게 만들고, 문학으로서의 수필과 일반적인 산문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어 수필의 입지를 더욱 좁혀 놓았다.
수필을 수준높은 문학의 장으로 끌어올릴 의지를 지닌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한 점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것과 싸워나가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야만 어떤 예술이든 스스로 존재할 수가 있다. 낡은 옷을 벗고 어설프게나마 새 옷을 걸쳐야 존재 이유를 지닐 수가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인류 역사상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 가장 첨예한 시대이고, 자연과 인간의 보조화가 극에 달한 시기이다. 작품 외적 자아가 작품에 직접 개입하여 주체와 객체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갈래는 수필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양식은 수필이 가장 쉽게 창출할 지도 모른다. 수필이 고답적인 관조의 양식에 얽메여 있는 동안, 시와 소설은 이미 교술성과 허구성을 접목하는 방법적 전략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지조 또한 수년 전부터 "열린 시조"의 기치아래 인적, 물적 자원을 집결하고 자유시에 필적하는 새로운 형식을 창출하여 현대문학으로서의 의미를 되찾고 있다.(최근 몇 년 사이 주요 문학지에 시조를 싣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수필에서는 아직 그 어떤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론적으로 주창하며 나서는 이도 없고, 작품으로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다. '대구수필' 제 21집에 실린 대다수도 수필다운 수필, 수필을 쓰기 위한 수필에 불과하였다. 수필을 버림으로써 수필을 새롭게 세우려는 의지는 읽기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도 김인기의 「삶은 누더기와 같고」와 홍억선의「꽃재 할매」는 가능성의 문을 조금 열어 놓는다. 김인기는 제문을 차용하는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다. 제문의 양식을 활용하여 객체를 대상으로 던져두지 않고 주체에게 끌어들여 자아화하는 서정적 양식을 보여준다. 말이 흘러가는 길을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유려한 문체도 주목할 만하다. 「꽃재 할매」는 수필의 본질인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을 차단하고 작품 내적 서술자의 독백으로 진술되는 형식이다. 간명한 내용이라 수필의 이름으로 발표했을 뿐 사실상 소설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온 셈이다. 다른 갈래의 양식을 충분히 소화하여 새 양식을 숙성시키지 못한 때문에 인식의 전환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두 수필가가 보여 준 인식의 깊이나 허구의 양식을 도입하는 문체상의 파격은 지금 쓰여지고 있는 형태의 수필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을 살려서 수필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궁극적으로 수필이 아니면 도저히 쓰여질 수 없는 문학의 한 영역을 확보하려면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수필계의 전반적인 인식과 체제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금 대구의 수필계는 "영남수필"과 "대구수필"로 크게 나뉘어 있다. 십여 년 전부터 동인 차원의 인원을 넘어선 다수의 회원을 확보하다보니 이제는 각각 수십 명이 참여하는 협회차원의 모임이 되었다. 이런 형태는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다. 변별성이 거의 없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두 패로 갈라진 것도 못마땅한 일이지만, 큰 그룹을 만듦으로써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를 기존의 틀에 동화하도록 한다는 점은 실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이런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모임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창조성을 갉아먹는 악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며, 새로운 형식의 글을 쓰는 사람들을 배척하도록 만들 터. 그렇다면 해결책은 자명하다. 적어도 1990년대 이후 등단자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좋겠지만, 두 모임이 현재의 상태로 존속하더라도 함께 고민하고 치열하게 탐색하는 여러 개의 작은 동아리들이 활동하는 방향으로 전체 구도가 바뀌지 않으면 사실상 새로운 작업은 기대하기 어렵다.
앞서 홍억선과 김인기를 예를 들었지만, 이들도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면 결국에는 기성세대의 양식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터. 본인들은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김정옥과 허창옥 세대는 이런 그릇된 체제의 희생양이라 할 만 하다. 1990년대 전반기에 이들은 인식의 깊이나 문체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영남수필에 소속된 뒤 점차 상투적인 인식으로 퇴행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제는 초기의 신선함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다른 수필가와 변별성을 유지하려는 잠재된 욕망이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감정의 과잉을 조장하기도 한다. 지난해 발간된 『영남 수필』은 책을 구하지 못해 알 수 없지만, 『대구문학』에 발표된 김정옥 「나래 의상실에서」는 이런 폐해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수필 중 유일하게 타자에 대한 인식이 자아 안에 존재하는 내적 타자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감정의 과잉과 인식의 편협함으로 중간부터는 도덕적 상투성과 비현실적 인식에 매몰된다. 이식과 문체가 비교적 좋은 수필가인데도 불구하고, 시와 소설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이슈가 되었던 문제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고 타자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각도 읽기가 어려우니,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의 시야가 얼마나 좁고 상투적인가를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수필가 모두가 첨예한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구 지역에서 발간되는 문학지를 보면, 자기 생각을 표현하면 모두 문학이 되리라는 소박한 인식으로 일기 수준의 수필보다 더 형편없는 시나 시조를 발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문학판의 중심에는 뛰어난 시인과 작가가 일구어온, 첨예한 인식을 담아내는 다양한 형식과 존재를 탐색하는 치열한 에너지가 들끓고 잇다. 그것이 문학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모델을 제공하고 힘이 되어 새로운 창조의 불꽃을 피울 수 있게 한다. 불행하게도 수필에는 그런 역동적인 판이 없다. 전범은 낡고 힘은 고갈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른 문학판에라도 뛰어들고 예술의 여러 갈래를 기웃거리며 수필을 과감하게 버리지 않으면, 수필은 결국 호사가들의 여기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수필은 있어도 문학은 없다?
이동민(영남수필문학회 회원)
대구문학 54호에 수필 월평을 쓴 김양헌은 대구 수필계에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다. 그 충고는 우리 수필계가 김양헌에게서만 들은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들이어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왜 반박하는 글을 쓰는가 하면 평의 논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서이다. 비평은 감상자가 작품에 대해 가치판단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단의 규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 따라서 평글을 논증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양헌의 글에는 수필이나 문학, 예술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는 부자 방망이처럼 문학이나 예술이라는 말 한 마디로 수필을 폄하하는 논거로 사용하고 있는데는 아연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편안함이나 잔잔한 감동이 필요없는 정서는 아니다. 예술적. 문학적 가치와 연관지어보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필자의 식견이 좁은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필은 30연년 전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나 지금 작품이나 거의 변한 게 없는 듯하다. 혹자는 이것을 수필의 장점으로 내세울 지 모르겠지만, 삶의 양식이 현저하게 달라지고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예술로서의 의미는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이다. 현대 예술과 문학의 본질은 보편성과 항구성을 담보하면서 끊임없이 기존의 인식과 형식을 허물고 존재의 진실에 대한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수필이 문학과 예술의 한 하위 갈래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안주란 있을 수가 없다."
인용한 글이 수필을 폄하하는 논거로 제시한 김양헌의 패러다임이다. 그의 말마따나 수필이 문학과 예술의 하위 갈래라는 가정하에서 논한다는 것은 그는 아예 수필을 문학의 장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수필에 대한 판단기준이 그런데도 수필에 대한 평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 아닐까.
그는 우선 예술이나 문학의 개념 정의에서 분명히 보편성과 항구성을 기본으로 들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수필이 문학성과 예술성을 잃고 있는 이유를 바로 보편성과 항구성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로서 30년 전에 교과서에 실린 수필이나 지금의 수필이나 거의 변한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논거는 존재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 인식과 형식을 파괴하는 과정에 두고 있다. 그는 이 "과정"에 굉장한 비중을 두고 있음을 이 인용문에서 뿐만이 아니고, 실제의 예증을 홍억선의 "꽃재 할매"를 들므로서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가 수필 평의 판단기준으로 "과정 그 자체"에 두고있음은 평자의 고유 권한일테니까 여기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의 논거로 내세우는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문학의 정의에 의하면(미학사전에서) 광의로는 문서 형식으로 고정된 모든 언어적 소산이라고 하였고, 협의로는 이들 중에도 특히 미적 품격을 갖춘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문학의 개념은 문서형식을 한 언어적 소산물이 우리에게 직관에 의거하여 개념적 사유없이 쾌적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 더 그가 평글의 근거로 삼은 예술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하자.
예술의 본질을 규정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예술 자체를 주안점으로 삼을 때는 내용과 형식을 따지게 된다. 또 하나는 예술가의 주관적 창조 작품에 두고 외적 대상의 모방이나 재현을 통해서 예술가의 주관적인 감정의 표출에 돌리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예술이란 문화의 한 영역 내지 문화가치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과 예술을
"발버둥치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 정의하여 수필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평하는 것은 너무 아전인수식 근거 논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왜냐면 그가 그렇게도 문학의 범주에서 쫓아버리고자 하는 수필도 위의 정의에 의하면(사전에 의한) 문학과 예술의 정의에서 그렇게 어긋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만의 논리로 문학 장르에서 수필을 추방하고자 하는 것은 수필을 쓰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고, 더 나쁘게 말하면 테러를 가하는 일인 것이다.
"오늘날의 소위 수필가는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가 수십 년간 인간과 세계에 대해, 진리와 예술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탐구해 왔는지 거의 모르고 있고, 그 성과나 잘잘못을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생략- '지금''여기'에서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문학과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는 물음과 맞서 싸우지 않는 글은 요행히 수필은 될지 몰라도 문학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수필가들이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는 분명히 수필가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어 폭력이다. 치열하게 탐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교묘히 대비시켜서 마치 악과 선을 이분화하는 부시의 어법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말들을 뱉아내면 허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 지칭하는 대상은 엄연히 감정을 지닌 생물인 이상 그 말들을 가슴에 가두어두기 마련이다. 또 분노의 감정을 표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말을 할 때는 그 증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위의 글에서는 논증은 없고 그의 독단만 있을 뿐이다.
위의 글에서도 수필은 문학이 아니다라는 그의 암묵적 전제를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모든 문학 이론서가 수필은 문학의 하위 갈래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필의 요건만 갖추면 저절로 문학이라는 자격은 얻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한 개인이 문학의 자격이 있느니 , 없느니 라고 논할 거리가 아닌 것이다. 아예 문학의 장르로 인정도 않으면서 문학성을 논하는 것은 자기모순일 뿐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그는 "삶이 어떤 의미"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느냐."를 언급하고 있다. "의미"라면 내용을 뜻하고, 존재 방식은 "형식 내지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수필이 문학이라는 예술 양식에 끼일 수가 없다면 수필 글에는 담고있는 내용도 없고, 수필로서의 형식도 없다는 뜻인지......, 이글만으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용과 형식은 모든 예술론에 모두 들어있다. 표현 속에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느냐는 작가의 몫이지만, 오늘날의 예술론에서 독자는 작품에서 작가와는 다른 읽기와 해석을 할 수있을 권한이 있다. 따라서 작품의 읽기는 무한히 열려있다는 뜻이다.
평자도 단순히 한 명의 독자일 뿐이므로, 다른 독자들은 얼마든지 다른 읽기를 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자기의 읽기를 강요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아니 예술에 대한 권력행사일 뿐이다. 또 하나는 읽기와 해석이 아닌 의미 개념을 작가에게 떠넘기는 것은..., 그래서 의미를 담고있니, 않으니 하는 것도 독자의 태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가. 수필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도, 영남수필 회원 한 분이 평자에게 전화를 해보았다고 했다.
수 년전부터 수필의 허구성을 두고 수필계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음을 알고 있느냐고 하였더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수필에 관심이 적어서 몰랐습니다." 라고 답하더라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대구문협의 대변지라는 비중있는 책에다 수필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 용감하게 글을 쓸 수가 있었는지 그에게 묻고 싶다. 여기서 허구성을 화두로 끄집어 내는 이유는 뒤에 인용을 하겠지만 허구성을 도입한 소설 형식의 수필(?)을 의미있는 수필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몰랐다고 하니까 영남수필 회원인 김태원의 글 "수필문학의 허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수필학 제 5집, 1999. 한국수필학회)를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하겠다.
1) 1976년에 한국수필 겨울호에 정진권은 "고심하여 얽고 짜는 일"을 발표하여 수필에도 허구의 도입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그는 "수필문학의 이론 모형 연구" "수필문학의 허구성 고찰" "한국 현대수필 문학론"을 발표하면서 허구성 도입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김시헌(영남수필문학회원)의 즉각적인 반론이 있었다.
2)1983년 제 2회 한국수필가 협회 세미나에서는 주제를 "수필문학의 허구성"으로 하였다. 역시 김시헌이 그해에 수필공원(통권2호)에 반론을 펼쳤다. 이어서 반론에 대한 반론, 재발론으로 이어지면서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3)1989년에 제 8회 한국 수필하 협회 세미나에서 이철호가 "구성의 미학과 사실의 픽션화 문제"라는 주제를 발표하면서 다시 수필의 픽션화가 논쟁화 되었다.
4)1990년 제 7회 수필문학 세미나(충남 온양에서)에서는 "수필에서의 체험과 허구"가 세미나의 주제가 되어서 정진권, 이정림, 윤모촌, 유경환, 정목일, 정봉구, 공덕룡 등 많은 논자들이 참가하였다.
5)1996년에 수필가 비평사가 (통권25호) "한국 수필의 쟁점을 진단한다."라는 특집을 실으면서 여섯 가지 쟁점 사항을 제시 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역시 허구성이었다.
6)1999년에 발표한 김태원의 글도 허구성을 "상상"으로 포장하여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따라서 김양헌이 주장한 것처럼 수필가들이 무위도식하면서 90년대를 흘러보낸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면 김양헌은 왜 수필이 문학의 장르로 편입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지 문학사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문학이론에서는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을 논할 때에 협의의 개념으로 언어, 인생문제, 상상력과 허구성, 구조와 조직을 조건으로 들었기 때문에 허구성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거의 집념에 가깝도록 붙들고 있는 것이 허구성 배제이다. 이유는 허구성을 도입하면 수필이라는 정체성이 없어지므로 존재이유가 상실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허구성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논픽션류는 정보제공이나 실제적 설득을 주로 하고 있다. 수필은 바로 이와 같은 비문학적 요소를 갖고있기 마련이므로 오래 동안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논픽션류도 문학적 표현을 획득하여 미적 쾌락을 제공하면 문학의 장르로 편입되어진다. 최근에는 논픽션류에서 개인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므로 제4문학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이제 새삼스레 수필을 두고 장르론을 거론하는 저의가, 그 자신이 그가 말한 문학사나 수필사의 개념이 거의 없다는 것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수필의 존재 방식 즉 "형식과 양식"의 특징이라면 흔히 무형식을 꼽는다. 다시 말하자면 시, 소설, 희곡과 같은 특정의 형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수필의 무형식성이다. 오늘의 예술사조에서 형식의 파괴가 하나의 흐름이므로 이 무형식성이 수필이 아닌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무형식의 개념 속에는 수필이 이웃의 다른 글쓰기 형식, 즉 다른 장르들을 자유롭게 차용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장르들의 수평적 관계에서 장르를 변화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장르의 통합"이다.(김준오: 수필의 장르적 특성) 따라서무형식은 오히려 수필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우리가 장르 통합을 말할 때 유념해두어야 하는 것은 타장르가 우리 수필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이 한 예가 될 것이다. 여러 자전적 소설도 수필 형식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이미 1939년에 최재서가 "문학이 수필화"에서 주장하였던 사실이 있다. 실제의 작품으로는 이상의 "날개"가 있다.
앞서 말한 김준오는 "소설의 수필화는 수필의 지성화이다. 왜냐면 수필의 고백 형식은 내향적이면서도 지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소설이 수필의 덕을 보고 있는 듯이 표현하였다. 더욱이 수필은 21세기에서 문학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의 장르로 까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예로 든 "꽃재 할매"는 그도 언급하였듯이 작가의 개입을 차단하고 작품 내의 화자가 독백하는 형식이다. 바로 소설 형식인 것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따진다면 그것은 수필이 아니고 소설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두고 단도직입적으로 허구를 도입한 수필이라고 하기에는 수필이론에서 합의가 있고 난 뒤에 말해야 할 일이 아닐까.
수필문학의 무형식성이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은 모든 글을 수필이라는 장르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창옥을 예로 들어서 영남수필이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배척한다는 논리는 어처구니가 없기조차 하다. 허창옥은 자기 빛깔의 글을 쓰는 작가일 뿐이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수필집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비전문가의 산문집이 더 우수한 문체와 깊이 있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수필가로 등단하는 절차를 의미없게 만들고, 문학으로서의 수필과 일반적인 산문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어 수필의 입지를 더욱 좁혀 놓았다"
위의 인용문대로라면 비전문가(수필가가 아닌?) 쓴 글은 수필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하고 말하고 있다. 수필문학 세미나에서(몇 회?)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두고 수필의 장르에 속할 수 있는가를 심도있게 다룬 일이 있었다. 결론은 수필로서 아주 훌륭한 글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수필계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양식에의 도전을 주장하면서도 비전문가 운운하는 김양헌이야말로 수필의 입지를 고전적 양식에 잡아 매어두므로 수필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또 하나는 그가 예로 든 김정옥 작가를 두고 어느 작가를 말하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하더라는 대답을 하더라는 것을 들었을 때는 실소를 하였다. 그는 아직 영남수필을 읽어보지도 않았다면서도 영남수필을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글에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 수필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도 많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평자가 마치 제왕처럼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보낸다
15. 관찰하는 눈
우리는 평범하고 예사롭기만 한 사물이나 현상에서도 예리한 관찰을 통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이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의 새로움과 기쁨이란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 그것을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가가 플로베르다. 그는 한 개의 모래알도 똑같지 않을 정도로 정학하게 묘사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그만큼 사물을 정확하게 관찰하라는 이야기다. 이런 플로베르를 스승으로 모시고 글쓰기를 배운 사람이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모파상이다. 그는 자신의 표현력이 시원치 못함을 느끼고 플로베르에게 표현의 비법을 물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날마다 자네의 집 앞을 지나가는 마차를 관찰하고 그것을 그대로 기록하게나.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좋은 연습이라네." 모파상은 스승의 말에 따라 한 이틀 동안을 관찰해 보았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단조롭고 따분해서 실상 관찰할 필요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찾아온 모파상에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관찰이야말로 훌륭한 글쓰기의 연습인데 어째서 쓸모가 없다고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게나. 개인 날에는 마차가 어떻게 가며, 비오는 날에는 어떤 모습인가, 또 오르막길에서는 어떠한가? 말몰이꾼의 표정도 비가 올 때, 바람이 불 때, 또 뙤약볕 아래에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면 결코 단조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거네." 그 후 플로베르는 모파상이 원고를 가지고 올 때마다 더욱더 정확히 관찰하는 눈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모파상은 여기에 따라 끊임없이 글쓰기를 연습함으로써 후에 명작을 남길 수가 있었다.
중국의 서예가 왕희지 또한 그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필체가 그의 관찰력에서 나온 것이라도 한다. 그는 거위를 무척 좋아하여 그것들을 기르며 관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특히 연못에서 헤엄칠 때 물을 힘차게 가르는 거위의 발동작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여기에서 새로운 운필법을 창안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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