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강좌
1. 習作과 修鍊
글을 읽지 않고 글을 쓰려는 것은 밑천 없이 장사하려는 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읽어도 써보지 아니하면 이른바 眼高手卑格이어서 좋은 글을 못 쓴다. 목수나 석공이 되려면 먼저 끌로 구멍을 파고 대패질을 하는데, 징을 대고 망치질을 하는데 많은 修鍊을 쌓은 뒤라야 비로소 공예품이나 조각에 착수할 수 있다. 글을 쓰려면 우선 많은 습작과 수련이 필요하다. 소설이나 시는 여러 회의 추천을 받아야 문단에 등단한다. 推薦制가 좋고 나쁜것은 별개 문제로 하고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수련을 거쳤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수필이라고 대번에 써서 될 리가 없다. 이것이 현재 수필다운 수필이 드문 이유의 하나다. 구양수는 단 다섯자를 쓰기 위하여 數十枚의 원고를 버렸고, 陸放翁은 萬數千首의 글을 쓴 시인이지만 八千首가 넘은 뒤에야 남앞에서 서슴지 않을 시를 쓸 수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었다.
이태백이 쇠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다시 들어가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지 아니한가. 천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투른 글을 빨리 발표할 것이 아니다. 자기의 글이 처음 활자화되었을 때 기쁨이란 크다. 그러나 두고두고 후회할 때가 많다. 반드시 직업 문인이 될 필요도 없고 문단인과의 交遊, 문학단체에 참가함으로써 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분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고독의 길만이 스스로 자기를 키워나가는 일이다. 원래 수필은 고독의 소산이다. 이것이 싫으면 정치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할 일이다. 그러면 수필이란 현실 도피의 문학인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야 참여 문학일 수도 있고 비판, 투쟁, 혁명의 문학일수도 있다. 그러나 文藝란 技術이 필요하고, 技術이란 鍊磨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일정한 연마의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저 혼자 대성하기를 기다리고 앉았으면 이미 두각을 나타낼 기회를 놓친다. 우선 한자리 뚫고 앉아서 정진해야 한다고.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당선 작가나 출세한 작가들이 그 후에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예가 많고 기성 작가들도 얼마 안 가서 관록으로 한몫 보고 있는 예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 당나라때 시인 崔顥는 黃鶴樓詩 한편으로 李白을 압도하고 唐詩壇의 제일인자로 후세에 길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단 한편이라도 걸작을 낼 수 있다면 많이 발표하지 않을 것을 한탄할 것도 없지 아니한가. 지금 우리 나라에서 수필다운 수필이 별로 없는 것도 오로지 기초적인 수련의 과정을 밟지 아니했다는데 중대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수필이 다른 문학보다 수준이 낮다고 할 것이니, 이것도 소설이나 시나 평론을 쓰는 문학가가 그 餘力을 빌어 쓴 것 외에 專攻家가 드물다는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초적인 수련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일약 雄飛하여 수필문학의 개척자로서의 영광을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초심자에게 커다란 야망을 갖고 원대한 출범이 있기를 바라고 싶다.
다음은 글을 썼으면 몇번이고 몇번이고 퇴고를 거듭할 것이다. 一瀉千里의 速筆이 재주가 아니다. 한 자 한 자 쪼고 쪼아서 정밀하게 다듬어 나간다는 것은 가장 귀중한 일이다. 또 방망이를 못 맞은 글이란 자기 만족에 그치고 때를 벗지 못한다. 소설이나 시는 평론가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수필은 평론하는 이가 드물기 때문에 항상 自己流에서 만족하고 만다는 것도 수필이 발전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친구나 선배의 비평을 듣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칭찬하는 이가 있으면 두 번 찾아갈 필요가 없지만 결함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藥石으로 알고 고마워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칭찬 받기를 좋아하고 헐뜯기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이것이 항상 어려운 것이다. 자기 글의 결함을 밝혀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2. 소재의 선택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우주의 진리에서부터 곤충의 생태에 이르기까지 인생문제, 사회문제, 생활과 학문이 다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적 大家의 말이요, 보통으로는 소재의 선택이 그 글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 소재는 이론적인 것, 학문적인 것, 관념적인 것을 피하고 생활의 實感에서 찾아야 한다. 講壇수필, 교양수필, 문화수필, 계몽수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이 작품이 되자면 독특하고 참신한 새로운 발견이 있거나 체험의 절규가 아니면 아니 된다.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옛날에 소동파는 博學일 뿐 아니라 佛經 이치도 제법 아는 大文章家다. 절에 가서 '溪聲이 便是廣長舌인데 山色이 豈非淸淨身이뇨' 하는 시를 써서 得道한 글이라고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정말 高僧 此菴은 이 글을 보고서 門外漢이라고 껄껄 웃었다. 소동파가 아무리 불교를 잘 안들, 진짜 고승의 앞에야 웃음거리 밖에 더 될 수 있으랴. 아무리 철학이나 도덕이나 종교나 문화를 떠들어 봐도 혹은 書畵骨董의 아취를 풍겨봐도 그 길의 높은 전문가 눈에는 문외한이기가 十常八九다.오직 생활의 實感만이 참스러운 정서를 담을 수 있고 독자에게 절실한 공감을 줄 수 있다.
수필은 인생의 落穗란 말이 있다. 평범한 생활 속에 묻혀 있으면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참신한 수필이 될 수 있다. 소설이나 시에서 거두지 못한 것 이것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가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면서도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라야 한다. 식도락가는 일류 요릿집의 음식을 자랑하지 않는다. 뒷골목 남모르는 초막의 진귀한 음식이나 낯선 지방의 독특한 음식을 즐긴다.
봉지쌀만 사먹던 가난한집 아이가 쌀 한 말을 사왔다고 미곡상에가 자랑을 하고, 모처럼 보석 반지 하나를 얻어 낀 여인이 금은방에 가서 자랑한들 누가 거들떠볼 것인가. 그러나 내버린 북데기 속에서 한 되 쌀을 건지고, 마당을 쓸고 한 알 보석을 줍는다면 온 집안 식구가 떠들썩할 것이다. 시로 노래하고, 소설로 이야기하고 흘리고 간 인생의 落穗. 그러나 백옥같은 한줌의 쌀, 고귀한 한 알의 보석, 내가 발견하고 내가 거두어 두지 아니하면 건져 줄 이 없는 가치, 버릴 수 없는 인생의 향기, 수필의 소재는 여기에 있다. 이런 소재를 발견하고 이런 소재를 찾으면 이미 반은 성공이다.
3. 序頭의 得失
시작이 중요하다. 첫머리 한마디가 全篇을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 글을 써 보려고 느낀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 정서에서부터 출발하면 가장 좋다. 예를 들면 어제 팔공산으로 소풍을 나가서 본 단풍의 아름다운 것이 생각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쓴다고 하자. 그러면 "풍이 눈앞에 벌겋게 비친다"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그 출발이 청신하고 어제 하루의 단풍놀이가 즐거운 회상으로 나타나 전편의 정서가 살지만, 어제 아침에 출발하던 데서부터 시작해서 도중의 풍경을 그려가면서 단풍의 아름다움으로 들어가면 비정서적인 기록이 되고 말 것이다. 글을 쓰게 된 느낌의 현재에서부터 붓을 든다. 이것이 가장 쉬운 듯하면서 실제로는 어렵다.
글은 솔직한 정서표현을 요구한다. 그러나 붓은 비정서적인 기록으로 향한다. 쓰는 사람의 머리에는 정서가 차있기 때문에 이지적인 무미건조한 기록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자기대로 정서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기가 쉬운 것이다. 문장의 대가라도 가끔 그런 실수를 범한다. 남의 글은 지적하기 쉬워도 제 글은 깨닫기가 어려운 것도 자기 정서에 스스로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기의 글도 훨씬 묻어 두었다가 다시 읽어봐야 알게 된다.
서두의 설명이나 서론을 늘어놓지 말 일이다. 그것은 문장의 정서를 죽이고 청신한 기분을 해친다. 문학이란 정서가 가장 소중한데 설명이나 서론은 비정서적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記事的인 것을 내용으로 할 때는 묘사로 시작되는 수가 많다. 그것은 全篇의 무드를 조성해 나가려는 것이다. 단편소설의, 배경소설의 서두와 같다.
故事나 名句의 인용문으로 起句를 삼는 예를 많이 본다. 이것은 가장 쓰기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전편이 그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내용을 살리기가 어렵고 청신한 방법이 못 되는 경우가 많다. 안개같이 시작해서 안개같이 사라지는 글은 가장 높은 글이요, 기발한 서두로 시작해서 거침없이 나가는 글은 재치있는 글이요, 간명하게 쓰되 정서의 함축이 있으면 좋은 글이다. 그 어느 것을 취하든 느낀 동기에서 선명하게 붓을 들면 큰 실수는 없다.
서두를 살리기 어려운 또 하나는 서론은 안 쓴다 해도 서론적 요소는 피할 수가 없다. 즉 無頭無尾하게 댓바람에 말을 끌어낼 수는 없으니 무엇인가 한마디 하게 된다. 그러나 꼭 필요한 내용이나 정서의 함축이 없는 말은 단 한자라도 들어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우리의 욕심이다. 더욱이 서두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런 까닭에 될 수 있는 대로 긴 허두를 붙이지 말고 간명하게 시작하되 전편에 대한 암시적인 기틀이 되도록 유의하고 이론적인 말을 피해야 한다. 한마디로 해서 느낀 대로 직접 써 나가면 된다. 여러 사람의 글을 많이 읽어보고 그 득실점을 유의하여 살펴보면 스스로 터득이 될 것이다.
4. 생각 비우기와 변죽 울리기
수필을 쓰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 쓰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일단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남이 읽어서 의미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가치관과 윤리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 독자에게 얼마만큼 공감을 주겠느냐 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지만 일단 쓰여진 글은 '나의 글'에 그치지 않고 '우리'라는 확대된 의미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여과된 감정, 응축된 감동은 물론, 주변의 범상한 사건에서 진실의 요체를 밝혀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또한, 시대와 유리된 수필 작품은 공감대와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고백의 차원을 넘어 현실을 진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 세계가 필요하다.
수필의 제재는 일상적인 신변잡기로부터 지성적이고 철학적인 사색, 비판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심지어 수필의 글감이 우주의 삼라만상 모두에 걸쳐 있다는 표현조차 가능하다. 그런데 다양한 제재들을 무조건 쓸어 담는다고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바람직한 수필이 될 수 없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출판물 속에서 신변잡기에 가까운 잡문들이 수필의 문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수필은 평범한 일상사를 참신하게 해석 - 사색, 관조, 해학, 기지, 비평 - 하는 과정에서 문학성을 획득한다.
좋은 수필은 우선 문장의 맛깔스러워야 한다. 가수는 음성이, 화가는 색채 감각이 좋아야 하듯이 수필가는 문장을 다루는 힘이 기본적으로 갖추어 있어야 한다. 불확실한 단어, 호흡이 끊어진 문장, 문단 나누기의 오류 등이 반복되는 글을 끝까지 인내하고 읽어줄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시인이 시어를 발굴하듯 수필을 쓰는 사람은 수필어의 채광부가 되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말만 존재한다.(一物一語說) 단 하나의 적절한 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깊은 굴속에서 금을 캐는 광부와도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수필의 소재가 대부분 신변의 기록이다 보니 문학적 형상화를 위해 억지로 교훈적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교훈적인 글은 자칫 잘못하면 어떤 사실을 단정하여 훈계하기 쉽다. 억지로 교훈을 주려고 하다 보니 남들을 가르치려고 하게 된다. 수필은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글이다. 머리를 굴려 재치 있게 쓰려고 하지 말고 가슴을 느낄 수 있게 써야 한다. 수필을 읽고 나서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오랫동안 가슴 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보자.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을 쓸 때 생각은 많이 하고 쓰기는 쉽게 하라고 했다. 많은 생각 중에서 꼭 남아야 할 것만 남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생각을 비우는 작업은 바로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다. 아주 힘들게 얻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런 불필요한 욕심과 고집을 버리는 일이다.
문학적인 글의 형상화에는 토끼몰이식 접근이 필요하다. 주제를 향해 바로 돌진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멀리서 둥둥 북을 치고 변죽을 울리면서 그 울림으로 다가가야 한다.
수필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기 내면 세계를 고백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진실함'이 드러나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물론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쓸만한, 읽을 만한 소재라야 한다. 수필을 쓸 때는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대개 감정을 승화시켜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쓰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이 여유를 갖게 된다. 여유가 있어야 '부드러운 즐거움, 번뜩이는 기지, 날카로운 비평 정신'을 담을 수 있다.
5. 출장기(出張記)
1. 선택-서두 쓰기
오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어제 밤에는 잠자리에 누워 오늘 출장 갈 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선 어떻게 안동까지 갈까 하는 궁리를 했습니다.
기차로 갈까, 동대구고속터미널로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갈까, 아니면 승용차로 갈까?
기차는 시간이 맞지 않아 처음부터 빼기로 하고,
한 걸음이라도 편리함을 위해 승용차를 두었으니 차를 가져가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어느 길로 가지?
가는 길은 서너 갈래가 있습니다.
경산 나들목에서 차를 올려 중앙고속도로로 갈아 타는 길이 있습니다, 다음, 산격동에서 새로 뚫린 국우터널을 지나 동명으로 빠져 잘 닦아놓은 4차선 국도를 이용하는 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는 곳이 경산에서 가까우니까 하양, 영천 신령을 넘어 의성으로 해서 죽 올라가는 길도 있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침 시간을 확실하게 단축시켜줄 고속도로를 선택했습니다.
비록 당일 다녀오는 짧은 출장이지만 300여리가 넘는 길이니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차껍데기라도 둘러보고 타이어도 한번 차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서기도 전에 머리에 이렇게 생각해 둘 일이 복잡습니다
고속도로는 평일인데다 출근 시간을 조금 비껴나서 무척 한산했습니다.
이러다간 너무 일찍 도착해서 심심할 것 같았습니다.
금방 군위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밥을 잊었습니다.
안동에 도착해 잠시 머뭇거리면 금방 점심 시간이 될 텐데 참을까 말까 또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거라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휴게소에 들어가서도 아무것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가락국수와 자장면, 만두를 파는 분식코너가 있지만, 아침부터 밀가루 음식은 싫습니다. 햄버거코너도 있습니다. 원래 그런 음식은 잘 먹지 않습니다. 한쪽 구석에는 통감자가 익고 피대기가 몸을 비비 틀고 있습니다. 간이 슈퍼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먹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식·양식 코너에 섰습니다
이제 돌솥비빔밥과 육개장과 황태 국밥과 돈가스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됩니다.
시간을 맞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주차보조원이 안내를 잘 해주어 이번에는 고민하지 않고 쉽게 차를 주차하였습니다. 마지막 선택의 고민은 등록을 하고 대강당에 들어가 앞에 앉을까 뒤에 앉을까 하는 문제만 남았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까지의 준비 작업이 이렇게 힘듭니다.
2. 주제 찾기 - 본문 쓰기
오늘의 주제는『웹 기반을 통한 교수 - 학습 방안 포럼』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과 관련된 보고회나 토론회에 웹교육이란 용어가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는 만병통치약입니다.
(가)
인사말로 연단에 오른 지역 교육계의 수장께서는 상투적인 덕담을 몇 말씀 던지다가 갑자기 신상 문제로 말꼬리를 돌립니다. 각본에 없던 이야기입니다. 조금씩 목소리에 진폭을 키우더니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인사말을 완전히 넘어섰습니다.
말의 끝을 넘겨 짚는 500여명의 청중은 그만 민망스럽습니다.
(나)
기조 강연에 나오신 분은 대학교 교수이십니다.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이 내려옵니다
요약한 강의 내용을 깔끔하게 파워포인트로 작성하여 한 장씩 찰카닥찰카닥 넘깁니다.
모두들 재미있게 시청합니다
문제는 강연자의 목소리입니다.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들릴 듯 말 듯 계속 이어집니다. 차분하다 못해 점점 지겹습니다. 스르르 잠이 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을 감고 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다)
단체로 밥을 먹으로 갔습니다.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역은 워낙 내륙지여서 예로부터 음식 문화가 그렇게 발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 헛제사밥 집은 간이 맞아 먹을 만하다고 모두 한 마디씩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밥값을 묻는 이도 있고, 명함도 받아 가는 이도 있었습니다.
(라.)점심을 먹고 나서는 일선 현장에서 성과를 올린 실무자가 발표자로 등장합니다. 실적물로 어느 연구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까와는 달리 강연자는 힘이 넘치고 자신만만합니다. 눈을 부릅떴다가 팔을 흔들었다가 강당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가끔 박수도 받습니다. 청중의 호응에 고무된 강연자가 오버를 합니다.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드디어는 동네 똥개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제한된 발표 시간을 넘어 사회자의 권고를 여러번 받고도 못내 내려가기를 아쉬워합니다. 이야기도 한물 간 내용입니다
(마) 다음으로 구미에 근무하는 어느 분이 나왔습니다. 시들할 때가 되어서인지 인사를 해도 박수 소리가 약합니다. 발표자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박수를 한 번 더 쳐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모두들 한 번 웃고는 자신을 위해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발표자는 많은 것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제까지 웹 교육 찬양론으로 거품을 물던 사람들과는 달리 웹기반을 바탕으로 한 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집니다. 새로운 시각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받아 적기도 합니다. 발표자는 청중의 반응에 고무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강조할 부분은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조금도 넘기지 않았습니다. 발표를 마치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박수를 쳤습니다.
3. 참주제- 결말 쓰기
돌아오는 길은 서두를 일이 없기에 국도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안동을 벗어나 조금만 내려오면 무릉도원이란 곳이 있는데 오랜만에 그곳을 지나쳐 보고 싶었습니다. 새길이 나기 전에는 오며가며 속도를 줄여 둘러보며 왔었는데 석양길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냇물과 냇물로 뛰어내리는 산비탈이 상상속의 무릉도원을 이룹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만 그곳을 무심코 지나쳐버렸습니다.
웹과 헛제사밥만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남은 건 '웹교육의 문제점'과 '헛제사밥 생각'뿐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 두 가지가 오늘의 참주제가 되는 거지요.
석양을 안고 돌아오는 길이 그리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4. 에필로그
하루든 한달이든 한 인생이든 세상 만사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봅니다.
더구나 인생으로 보건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선택의 연속이고, 끝없는 주제 찾기로 진행되어 끝을 맺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짧은 유년의 시절은 서두, 장년은 본문, 황혼은 결말로 견주면 억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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